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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회복시키신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우리의 관계도 이미 회복시켰습니다.
그게 교회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인 우리가 하나 되었다는 사실에 이어 그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 핵심구절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역할과 책임이 있는데 그게 뭐냐하면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걸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우리에게 잘 설명하고 싶어서 교회를 예수님의 몸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머리 되시고, 교회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팔과 다리 각각의 지체가 연결되어 몸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고 연합되어 세워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서로를 통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잘할 수 없습니다. 우리라는 관계를 통해 서로를 통해 자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붙어 있어야 된 이유 중 큰 이유가 그래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어려움도 겪고 아픔도 겪고 그 속에서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예수님의 충만함 예수님의 그 사랑의 깊이가 교회라고 하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통해 바울은 에베소 3장 10절을 통해
‘이제 교회를 시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개인을 통해서 역사하시지만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래서 하나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라고 했는데 힘써서 지키라는 것을
영어 성경에 보면 eager to maintain the unity라고 쓰여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데 힘써가 꼭 힘을 쓰는 것만 생각을 하게 되는데
힘써라고 하는 eager이라는 단어의 어근의 의미가 뭐냐면 서두르다 재촉하다 의미가 있습니다.
서두르고 재촉해야 할 만큼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바울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1. 겸손
교회, 부부, 가정을 어떻게 지킬 수 있냐면 내가 겸손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겸손을 이야기할 때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겸손함으로 대하라고 하는 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옆에 있는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을때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값으로 사신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라고 하는, 교회라고 하는 관계가 내가 예수님을 높일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가 기억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때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는 거죠.
2. 온유
겸손이 나의 잘남, 나의 어떠함에 관련된 부분이라고 한다면
온유라 하는 부분은 나의 힘, 나의 자세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부드러운 거 맞지만 단순한 부드러운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절제된 힘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식 사고로 온유를 잘 길들여진 야생마를 그 이미지로 많이 사용합니다.
주인을 만나서 길들여졌지만 여전히 그 야생마로써의 그 힘이 잇습니다..
힘이 있지만 주인 때문에 주인의 통제를 받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모세를 꼽습니다. 성경에서 모세를 온유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혈기 왕성하고 사람을 쳐서 죽인 사람이었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속된 불편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그는 온유했습니다.
그는 200만명을 통솔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기가 통솔자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통솔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을 절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예수님을 높일 때 겸손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아 나는 예수님의 길들여진 야생마 구나!'
예수님께 내가 속하고 통제를 받을 때 우리는 온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고 예수님께 붙잡히면 우리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을 수 있고 행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3. 오래 참음
성경에서 오래참음이라는 것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에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끝없이 참아 주을 먼저 나에게 드러내 보이심으로써 앞으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데,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됐냐면 하나님이 끝없이 참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때리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런 바울을 끝없이 참아 주셨고
그래서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래 참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셔서 예수님 보내 주셨고 그 죄인들에게 용서와 구원과 자녀됨과 영원을 허락해 주신 것.
그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래 참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경험하고 그걸 붙잡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고 그러면 교회가 하나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헬라어 학자는 용납은 서로서로에게 모난 행동이나 말투를 표현하지 않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예수님을 높일 때 내가 겸손할 수 있고,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예수님께 속할 때 통제 당할 때 내가 온유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나를 기다리신 예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한 번 더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그 화를 참을 수 없습니다.
화가 났을 땐, 일단 입을 받고, 눈을 감고, 고개를 일단 돌려 그리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예수님의 오래 참음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의지해야합니다.그럴 때 우리는 한 번 더 참을 수 있습니다.
그 한 번 한 번이 쌓여 오래 참는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옥중 서신이 불리는 성경입니다.
"여러분 하나되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분 안에 있는 건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서로 함께하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그걸 힘써 지키십시오!" 라고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감옥 밖에 있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쓴 편지가 에베소서입니다.
'하나가 되었다'라고 하는 건 여전히 멀고 여전히 힘들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값진 일이구나! 너무나 놀라운 일이구나! 그 안에 이러한 비밀이 있구나!' 라고 우리가 함께 소망하기 원하고
그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고자 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을 강요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겸손함으로 살아가고, 다시 온유함으로 살아가고, 오래 참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