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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에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패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 à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약탈자들이 일으키셔서 그들을 치십니다 à 이스라엘은 그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à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à 사사가 통치하는 시기에만 이스라엘의 평화가 있습니다 à 사사가 죽으면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합니다.
이것이 사사기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패턴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의 이야기가 이 패턴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깁니다 à 주님이 분노하셔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넘기십니다 à 8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습니다 à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à 옷니엘이 살아 있는 40년동안 평화를 누립니다 à 옷니엘이 죽으니까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지 않으면 노예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은혜를 져버리고 자신들에게 풍요와 다산을 안겨줄 바알과 아세라를 자신들의 신으로 섬기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옳다고 여겨지는 대로 살아 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이 옳고 좋아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섬기는 자들보다 돈을 쫓아가고 명예를 쫓아가고 그것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 같이 보입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위해 내 삶의 모습은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바알을 섬기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것들에 좋다고 생각하고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우리들의 범죄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악한 행동들도 싫어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됨을 잊어버리고,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방법들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산 리사다임에 넘기십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회개입니다.
그러나, 사사기의 전체 내용에서 이스라엘의 고통 속에서 도움을 구하는 비명 짖을 뿐이지 돌이킴은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바로 첫 번째 사사, 옷니엘 입니다. 옷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옷니엘를 세우실 때 그를 사사라고 명하지 않으시고 구원자라고 명하셨습니다.
당시 사사는 정치적 군사적 지위였고 재판관이라고도 표현됩니다.
구원자는 히브리어로 모시아라고 하는데, 구원자 모시아라 함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이끄는 사람,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향해 돌이키게 만드는 자로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10절에 보면, 옷니엘를 하나님께서 첫 번째 사사 구원자로 세우시는데 주님의 영을 그에게 내립니다.
옷니엘만 봐도 위대하다고 느껴지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옷니엘은 구산 리사다임왕과 싸워 승리합니다. 그리고 옷니엘이 살아 있는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립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누리는 평화는 40년이 전부였습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은 또 범죄합니다.
3.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후 수많은 사사들, 수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하나뿐인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십니다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립니다. 성령이 예수님께 내립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주님의 영이 내리십니다. 그리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사역,
바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사역,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삼아 주시는 사역이 시작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9절에 ‘ 1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그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의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였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 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바울의 말씀이 사사기의 이스라엘 모습과 너무 닮아 있지 않나요?
허물과 죄 가운데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것처럼 우리도 그랬다 라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도 그들과 똑같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라는 것은 유한한 것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쫓아가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좋은 집, 돈, 명예가 가져다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감입니다.
행복감은 영원하지 않는 일시적인 감정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나중에 오히려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행복감과 다르게, 행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때로는 우리가 연약해서 넘어질 때 있습니다. 그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시고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반드시 그 구원자를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집, 돈 차등 눈에 보여지는 바알 같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우리의 눈을 들어 주를 봅시다.
우리에게 구원자 평화의 왕이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행복의 나의 삶에 이루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