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는 여호수아서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 주겠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셨고, 십계명을 기반으로 나라의 법을 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는 가나안 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약속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그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는 배경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왜 굳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고 죽이게 하셨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린 아이들을 불에 태웠을 정도로 잔인하고 타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악이 가득한 가나안 사람들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그 죄악을 심판하시고 회복하시기를 원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3절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여기서, 말씀 중에 ‘줄것이니’ 가 아니고 ‘주었노니’로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전쟁에 앞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전쟁의 특징과 내용은 여리고성 전투처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는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본문으로 들어가 보면,
특이한 장면 1 :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먼저 올라가 싸우라고 하시지만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올라감.
특이한 장면 2 : 하나님이 유다 지파와 함께 하셨습니다. 산간 지방은 차지했는데 낮은 지대 가나안 사람들은 철병거로 방비하고 있어 쫓아내지 못합니다. 27절에도, 30절에도, 31절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는데 쫓아내지 못하였다 라고 나옵니다. 또 28절, 30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노예로 삼았다.
이 특이한 장면들은 잘못이라는 표현보다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을 가로막는 모습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또, 이런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이 하나님의 일도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사람들은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언약 깨는 듯한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울지만 돌아서지 않고 하나님을 등지며 그대로 똑같이 살아갑니다. 점점 더 순종하지 않고 점점 더 악하게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 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안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밖에서 등지고 눈물을 흘립니다.
▶딜레마와 긴장 존재하는 구절
사사기 2장 1절과 3절 사사기 2장 1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약속할 건데 이 약속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과 사사기 2장 3절 가나안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될 거야. 즉, 언약을 깨뜨리겠다 말씀이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게 적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문맥이 딜레마와 긴장이 존재한다고 얘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셔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고 싶은데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언약을 지키려고 해도 도저히 언약을 지킬 수 없는 존재가 이스라엘 백성들 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진짜로 순종하고 싶지만, 우리의 순종은 세상의 유혹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매번 넘어집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약속 하시겠다고 했다가 약속을 안 지키시겠다 했다가’ 이 딜레마와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2장 1절에 ‘주님의 천사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
여기서, 주님의 천사는 예수님을 뜻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도 이 땅에 오셔서 활동하셨는데 성경은 그 분을 여호와의 사자, 주님의 천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여기에 나오는 길갈은 여호수아서에서도 나오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나의 은혜로 나의 백성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신 언약을 맺으신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서도 길갈에서 올라왔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전히 똑같은 죄를 반복할 그들에게 하나님은 베풀어 주실 은혜를 계속해서 기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사사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등지고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등지고 우는 존재가 아니라 왕 앞에서, 왕 안에서 울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나 이렇게 하고 싶은데 못했습니다. 안 한 것 맞지만 못했습니다.’
그 고백을 그 왕이신 예수 안에서, 예수 앞에서 능력을 붙잡고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셨으며,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는 자 되게 하셨습니다.
등지지 말고,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왕 앞으로, 왕의 품 안으로 거기서 우십시오!
그 은혜를 누리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