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장면 1
예수님을 믿게 된 유대 사람 중에
바울을 오해하는 사람들과, 예수님 믿지 못했던 아시아에서 온 유대 사람들이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 이방 사람들 데리고 들어왔다고 소동을 칩니다.
군중은 바울을 잡아다가 성전 안에서 사람 죽일 수 없어서 성전 바깥으로 끌고 나가서 바울을 마구 때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천부장이 출동하여 죽음의 위기를 하고, 군인들이 바울을 안토니오 요새 안으로 데리고 갑니다.
본문 장면 2
그때 바울이 천부장에게 헬라어로 말할 기회를 좀 달라고 물어봅니다.
천부장이 허락을 하고 바울이 그 계단 층계 위에 서서 연설을 시작합니다.
자기를 거짓말로 공격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들고 자기를 심하게 때린 사람들 앞에서 서 있는 상황입니다.
연설은 히브리 말로 합니다.
연설 첫마디가 동포 여러분입니다. 영어로 뭐라고 되어 있냐면 brothers and fathers라고 되어 있는데
죽어라고 때렸던 그 사람들을 자기의 형제요, 자기의 아버지라고 연설합니다.
바울이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그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눈의 가시처럼 싫어하고박해했고 그래서 죽이려까지 했습니다.
예전엔 그 일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바울이었기에 그들이 예수님을 모른다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로 인해 슬퍼했고, 그들로 인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이 이방사람들을 성전에 안 데리고 들어갔는데 거짓말로 이방 사람들을 성전 안에 들어갔다고 그를 몰아세우고 때리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무서움과 억울함과 화 나는 것을 뛰어 넘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 바울도 저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바울을 이렇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하고 비웃고 모독하는 사람들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하십니다.
바울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사람이었으나,
그런 행동은 내가 믿지 않을 때, 알지 못하고 한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나도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는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고 얘기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의기양양하게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가짜니까 다 감옥에 집어 넣을려고 갔던 중에 어느 날 내가 그 예수를 났습니다. 분명히 죽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나를 찾아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고 듣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 속에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내가 몰라서 그런거구나, 그런데 그분이 나를 만나 주셨구나” 를 알게 된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바울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더 이상 듣기를 거부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 잘못했어, 너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 너 틀렸어' 그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어 죽음 뒤에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무지와 무능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를 만드신 그 분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사랑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고 계십니다.
그 안에는 용서와 기쁨이 있습니다. 자유와 평안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그 빛으로 나아가서 그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