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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 26~ 31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 울자.'

by chofc 2025. 5. 27.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실 때 그 예수님을 따라가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두 부류가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구레네 사람 시몬, 또 한 부류는 여자들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는 상태인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수천명의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선택 된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병사들이 그에게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게 가고 했다 라고 나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는 강제와 억지가 아닌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과 비교되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이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건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만 생각할 수가 있는데 고통보다 더한 것이 사실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에도 고통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않고 부끄러움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실 그 기쁨 때문에 참아 내셨습니다. 회복시키고 자녀 삼으실 그 기쁨 때문에 강제로, 어쩔 수 없이, 수천 수만명 중에 재수 없이 그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친히 그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그 자리로 지시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십자가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을 보면,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반드시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먼저 십자가를 지신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인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 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분,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완성하실 그분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린 반드시 그 자리로 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이루신 그 일이 우리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갔던 여자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경꾼들이었지만 눈에 띄는 한 무리가 있습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힘겹게 길을 가시고 여인들은 울면서 따라가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예수님이 길을 멈추시고 그 여자들에게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세 가지를 기억합시다.


1. 예수님께서는 왜 울지 말라고 하셨을까?

첫 번째, 예수님께서 왜 울지 말라 그러셨을까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울고 있는 여자들을 도리어 걱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 더 부끄러운 시간을 갖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자기의 죽음을 놓고 슬퍼하는
그 여인들의 고통과 아픔을 오히려 위로하고 계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왜 울라고 하셨을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
그 이유는 그날, 그 때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날, 그때의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대략 4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 성은 로마군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합니다.
②모든 인간은 죽게 되는데 그 뒤에 있을 심판 그리고 그 심판 뒤에 있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마주하게 될 영원한 형벌, 지옥, 멸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우리 가운데 있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우리는 울어야 합니다.

운다는 것은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편 90편에서 모세가 이런 기도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달라. 인생의 한계를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것을 경험하고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아이들, 다음세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우는 우리 담 없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하여 아파하고, 기도하고, 몸부림치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